1. 문화의 대중화와 대중의 문화
문화(culture)는 원래 '경작하다'는 의미의 라틴어 colere에서 유래한다. 경작을 한다는 것은 자연 상태의 땅을 갈고 일구어 농사를 짓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직접적으로 획득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인위적으로 자연을 개조하여 자신의 계획과 노동을 통해 먹을거리를 획득하는 상태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념적으로 문화의 반대는 자연(nature)인 셈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단순히 농경의 상태에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문화는 인간이 자연과의 단절을 보여 주는 모든 인위적 삶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좁은 의미의 문화는 다시 문명과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문명은 넓은 의미에서 문화에 포함되지만, 문명을 인간 삶의 물질적 성과를 주로 지칭하는 것이라면 문화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의미로 구분 지어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칭하는 문화는 주로 대중문화 영역과 연관되는 경향이 있다. 대중문화가 문화를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현대가 대중문화의 시대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특정한 시대 혹은 사회를 대표하는 문화는 그 시대의 주류 세력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이다. 예를 들어 조선의 문화를 '사대부문화'가 대표한다면 조선사회의 주류는 사대부 계층이었다고 할 수 있고, 서양 중세의 대표적인 문화를 '기독교문화'라고 할 수 있다면 당시의 주류 세력은 기독교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0세기를 '대중문화의 시대'라고 한다는 점에서 20세기는 대중이 주류가 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한 시기는 20세기라 할 수 있지만, 대중이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이른바 근대의 출현과 연관되어 있다.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으로는 르네상스와 그 뒤를 이어 출현한 종교개혁을 통해 예술과 종교 영역에서의 개인의 위상이 올라가고 시민혁명을 계기로 개인의 정치적 권리가 신장되는 과정을 거친다. 한편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의 출현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의 개인의 중요성을 강화하였다. 달리 말하면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가치가 올라가고 개인은 오늘날의 대중이라 불리는 집단의 기초가 된다. 아울러 귀족 중심의 사회가 시민계급 중심의 사회로 변모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생활의 지형도 변모시켜 나가게 한다. 상류층의 기호에 맞추어졌던 음악, 미술 등의 전통적인 예술 장르들의 내용이 소위 부르주아라고 하는 시민계급의 눈높이에 맞추어지게 되었다. 시와 희곡 중심의 문학 장르도 소설이라고 하는 근대적인 문학 장르를 출현시켰다. 이렇듯 근대사회의 출현은 문화의 대중화를 가능하게 한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도시의 노동 계층 중에 일부가 중산층을 이루고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여가와 오락이 대중들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대중들이 사회 운영의 주류 세력이 되면서 그들이 선택하고 선호하는 문화의 비중이 증대한 것이다.
한편 근대 이후 시민계급이 성장하고 이들이 사회 운영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소수 지배층 중심의 문화 향유가 대중들에게로 확산되게 한 계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술의 진보이다. 서양의 경우 제지술의 보급과 뒤이어 출현한 인쇄술의 발전은 대중들에게 소설이나 신문 잡지 등의 읽을거리를 제공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19세기 후반 카메라의 등장과 20세기 전파매체의 보급은 대중들의 문화 향유를 급속도로 진전시키는 기술적인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기술적 수단을 대중매체라고 부른다. 마치 기계의 출현으로 인해 상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대중매체는 문화의 대량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대중매체의 발전은 처음에는 문화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면, 20세기 이후에는 대중의 문화를 창조하고 생산하는 차원에까지 이르도록 했다. 특히 뉴미디어의 출현은 단순히 대중들이 거대매체가 생산해 낸 결과물을 향유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생산의 과정에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이제 대중은 기존의 생산된 문화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가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게 된다. 대중문화 형성기 대중문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문화의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가 분명하게 구별되었으나, 뉴미디어 시대에 이르러서는 문화의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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