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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성찰

by travifountain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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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무엇일까에 대한 여러 가지 이해 방식이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정치의 의미를 역사적 혹은 규범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오늘날 정치 혹은 정치학이라는 뜻이 있는 'politics'라는 낱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폴리티케는 생활에 유용하거나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생산적 학문의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쉽게 말해 서양 고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정치란 절대적 힘을 지닌 누군가가 아랫사람들을 지배하는 활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활동이다. 정치는 국가의 행정적 관리로 단순화되는 것도 아니고, 피지배자의 순종을 강제하기 위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활동으로 축소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는 통치와 다른 것이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고대 그리스의 정치는 통치와 달리 정치 행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졌다. 정치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행위로 이해된다는 것은 그것이 타인의 지배를 위한 활동이 아님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정치의 본래 의미를 고찰한다. 여기서는 주로 아테네에서 전개된 민주정의 성립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고대적 민주정의 실마리를 제공한 솔론의 정치개혁이 어떤 규범적 지향을 낳았는지를 다루게 된다. 이를 통해 아테네의 자유 시민들은 역사적 투쟁을 통해 모두 공영역에서 행위를 하는 정치인들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들은 동료 시민 앞에 자기 의견을 공개적으로 선보이면서 공적 행위 중 볼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아름답고 탁월한 것으로 판정하고 그것을 공동체 구성원이 영원히 기억하고 따를 만한 윤리적 범형으로 삼았다. 이러한 공적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각자는 탁월한 존재로 인정되는 기회를 얻는다. 다시 말해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사적 존재에서 벗어나 공적 존재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무한한 삶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적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공적 행복이다. 

서양에서 정치는 광장이라는 구체적 공간 속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시민들이 모여 공적 활동을 하는 공간을 공영역이라고 하는데, 아테네에는 이와 같은 공간이 여럿 있었다.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프닉스 광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공영역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탁월한 모습을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는 현상의 공영역으로서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고대적 이해는 현대 정치의 문제점을 성찰하는 데 기여한다. 현대 정치는 엘리트의 지배와 공적 행복감을 만끽하지 못하게 하는 난점을 보인다. 그리고 현대 정치는 이해관계와 세력의 갈등 없는 분배라는 경험적 차원을 중심으로 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을 외면하게 만든다. 정치적 행위와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정치에 대한 규범적 이해는 중요하다.

1. 정치, 왜 필요할까?
정치를 화제로 한 대화의 공간에서는 늘 부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정치는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화합을 목표로 하는데, 그 목표를 지향하면서 내보이는 실제 모습은 역설적으로 대립과 갈등이다. 자기 의견이 더 옳다고, 자기 의견이 모두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할 것이라고 서로 주장하기 바쁘다. 그러면서 패거리를 만들고 자기네의 지배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대편을 고립시키는 책략을 부리는 데 여념이 없다. 거짓과 협박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하나둘 정치에 대해 진절머리를 치며 자리를 뜬다. 

정치인에 대한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예전에는 정치인이 폭력으로 지배권을 장악했기에 그랬고, 오늘날에는 시민의 의견은 무시한 채 제 갈 길을 가 버리고 있는 모양새 때문에 그러하다. 나날이 요식행위가 되어 가는 듯 보이는 민주주의 정치의 현실에 시민들은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보기 싫어한다. 국회는 부패한 정치인들의 집합소라는 생각 때문에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정치인에 대한 혐오는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거리라는 생각을 믿게 될 때 인간사회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20세기의 인류는 전체주의의 파국을 겪으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비싸게 치렀다. 전체주의 체제는 정치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면서 지탱되는 체제이다. 전체주의 사회는 체제의 유지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주도된 대량 학살이라는 파국은 그러한 수단의 정점이었다. 파국의 부활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정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건강한 정치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서양 정치에 등장하였던 정치적 행위와 정치적 공간에 대한 규범적 이해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정치라는 용어의 어원
서양의 전통에서 정치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폴리스는 높은 언덕을 중심으로 방벽을 치고 세워진 도시를 의미한다. 아테네나 스파르타와 같은 국가들은 이러한 형태의 작은 도시를 단위로 건립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서 볼 수 있는 'politike'라는 단어는 오늘날 정치 혹은 정치학이라는 뜻이 있는 'politics'라는 낱말의 어원이다. 'politike'는 폴리스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활동이나 학문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관조의 학문으로서, 둘째는 생산적 학문으로서, 경제학, 건축, 예술 등이 이에 속하며 실생활에 유용하거나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는 실천적 학문으로서, 정치학 등이 이에 속하며 고귀하고도 탁월한 행위와 시민의 공적 행복을 진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에서의 정치가 시민들의 공적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활동으로 이해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쉽게 말해 서양 고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정치란 절대적 힘을 지닌 누군가가 아랫사람들을 지배하는 활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활동으로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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