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

by travifountain 2023. 3. 19.
반응형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간에게는 이성을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면 인간 본연의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성을 소유하는 존재는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 입장은 자연은 아무것도 헛되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자연의 목적에 맞게 만들었다. 인간 누구라도 저열하게 행동할 수 있지만 이는 자연의 지향과 맞지 않는다. 동물은 식물과 달리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하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도 특별히 추론적 사고능력과 지성을 가진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리 안의 최선의 것들을 따라 살도록 온갖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 안의 최선의 것들을 찾아 나가는 것이 인간의 과제이다. 자연의 목적, 사물의 참된 본성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다. 자연은 인간에게만 이성을 부여했으므로 인간은 이 자연의 뜻을 잘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이라는 유기체에 적합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현대에는 이성을 합리적인 선택 능력, 즉 선호하는 것을 선택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보다 더 선차적인 문제를 논의한다. 어떤 것을 선호할 것인가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선호는 버리고 이익을 주는 선호만 남겨야 한다. 인간의 참된 본성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하면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맞는 것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 문제는 참된 본성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처음부터 알 수는 없다. 아직 가지지 않는 것이므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의 잠재력을 잘 실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가치는 독립된 개인이 선택하여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발견되어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 절대시하는 현대에 그 선택이 인간다움을 증진하는 선택인가를 묻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가치를 찾아 나가야 하고 참된 본성에 따라 최선의 방식으로 행위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참된 것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참된 본성을 외면할 때 우리는 본성을 실현할 수 없거나 행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연이 부여한 감정으로서 헛되게 부여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데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성을 따른 결과로 생기는 자아에 대한 사랑과 단순히 욕구 만족을 추구하는 이기심은 다르다. 자연은 인간에게 이성이 권위를 갖게 하였으나 이성이 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성을 잘 발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덕 있는 행위를 하는 데 익숙해질 때만 덕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 맞게 행위를 하는 것은 훈련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본성이기는 하지만 그 본성을 실현하는 능력은 갈고닦아야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시현하는 능력이 '덕'이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덕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덕을 획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덕은 '중용'의 덕으로서 , 예를 들면 만용과 비겁의 중용인 용기, 낭비와 인색의 중용인 후덕함 등이다. 


덕을 기르는 것은 개인의 기분에 맡겨 둘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을 위해 전력을 다할 때 공동의 이익이 성취될 것이라 믿었다. 개인은 덕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성품을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선이 완전히 양립할 수는 없지만 국민들은 공동체의 선을 쟁취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자연적인 일이라고 보았다. 모든 사람을 결집하는 바탕은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애정이며 국민들 간의 친애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인간에게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뜻이다. 사회 없이 살 수 있는 존재는 신과 동물뿐이다.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는 목적을 갖지만 이성을 통해 이 목적을 추구할 수도 있고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노예와 짐승은 국가의 구성원으로 부적합하다. 노예는 이성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사용할 수는 없고 짐승은 이성을 이해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정의와 공동선을 지향하는 욕구가 이싿. 그런데 선한 삶은 고립된 개인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 그래서 자연은 노동의 분화, 계급의 분화가 존재하는 정치체제를 산출했다. 국가는 공동의 목표와 공동의 도덕적 목적을 가진 공동체이다. 국가는 사람들이 본성을 발휘하는 데 적절한 여건을 제공하여 인간의 참된 본성을 실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사회가 최상의 상태로 조직화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였다.


인간은 육체적 본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감수성과 이성적 능력을 지닌 동물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를 가지게 된다. 쾌락 때문에 절제로부터 멀어지기도 하고 두려움 때문에 용기로부터 멀어지기도 하고 이기심 때문에 불의에 이끌리기도 한다. 그래도 인간 본성의 가장 지고한 요소인 "좋은 것과 신성한 것에 대한 앎"은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가장 자족적인 활동이면서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완성이라는 이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반응형

댓글